해방 후의 북한 교회
1. 김일성 정권의 대두(소련의 점령정책과 북한정권의 수립)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가 임박한 가운데 미․영․불․소의 4대 연합국은 포츠담에서 회담(1945. 7. 17~8. 2)을 갖고 전후 유럽문제의 해결과 소련군의 대일 참전에 따르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이 회담에 참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재입국한 각국 선교부와 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 청년회, 대한 여자 기독교 청년회를 포함한 당시 남한 기독교를 대표하던 거의 모든 단체들이 참여했다.
조선기독교 연합회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한국기독교 연합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교회의 신학적 주체가 될 수 없다. 나아가서 사회와 민중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종교기업 또는 종교재벌로 지탄받는 천박한 미국식 자본주의신학의 모방세력이 민족교회의 신학의 바탕이 되어서도 안 된다.
통일조국에 있어서의 민족교회 형성의 또 하나의 선행조건은 민족교회사의 새로운 해석이다
한국교회의 실천과제로서 북한선교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1)
통일과 민족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자아모색
한국의 기독교사를 보면 시대마다 분명히 교계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구한말에는 개화와 애국충군이었고 ㉯일제 치하에서는 조국의 독립과 신분해방
서론
* 한국교회사의 개념요소:한국 + 교회 + 역사
한국은 보편적 개념이 아닌 특수한 개념이다. 다른 국가들과 구별하여 말할 때 한국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교회는 보편적 개념이라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교회는 누구 누구를 위한 교회라는 제한이 없고 있어서도 안되기
직후부터 일반 민중을 위하여 한글 교리서를 번역하여 보급했다. 또, 당시 신자들은 박해시대의 교회에서는 순교자들의 기록으로 용기를 길렀다. 「성녀 아가타」,「성녀빅토리아」등 로마시대 순교자들의 전기를 읽으며 신앙을 증언할 용기를 얻었고 한국 순교자들의 기록을 소중히 간직하며 순교자
해방이 기독 신자들에게는 동시에 종교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단순한 믿음에서 구약의 역사를 한국 민족의 역사로 보고 이스라엘의 운명을 자신들의 운명으로 봄으로 시편과 예언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호소와 기도가 한국 신자들에게는
한국인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신앙과 교회가 있어야 한다. … 토착화는 초월적인 진리가 일정한 역사적 정황 속에 적응하도록 자기를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토착화 문제가 서서히 학자들 간에 거론되기 시작하였으며, 감리교신학교의 윤성범 교수의 단군신화 토착화 견해 단군신화에 나오
한국교회의 미래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그런면에 있어서 이 책 ‘한국교회 부흥운동연구’는 어떤 교리나 학문의 관점에서 다룬 것이 아닌 교회사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춰 내용이 전개되어짐으로 그 당시의 삶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게 함으로 많은 도전을 던져준
Ⅰ. 기독교 역사
기독교의 일반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지리적 배경과, 정치적 배경, 사상적 배경, 종교적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지리적 배경으로는 기독교가 발생한 팔레스틴은 길이가 150마일, 넓이가 60마일로 우리 나라 강원도보다 작은 땅이다. 동쪽으로는 넓은 아라비아 사막이 있고, 서쪽은